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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25화. 인문고전 독서가의 삶: 율곡 이이 2 _ 이지성 작가.

이뿐냉이 2010. 9. 15. 10:21

제25화. 인문고전 독서가의 삶: 율곡 이이 2

 

 

  1576년 10월에 율곡은 해주 석담에 ‘청계당’지었다.

 율곡이 여기서 인문고전을 강독하자 그 소식을 접한 나라 안의 선비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율곡은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 ‘은병정사’를 새로 지었다. 율곡은 은병정사에서 자신의 사상을 강의하면서 사계 김장생, 중봉 조헌, 수몽 정엽, 묵재 이귀 같은 또 다른 천재들을 키워냈고, 불후의 시조 「고산구곡가」를 지어 우리나라 시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제자들을 가르치고 문학에 전념하는 와중에도 율곡은 백성을 보살피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는 해주에 ‘향약’을 전파했고, 가난한 백성에게 곡식을 꾸어주는 사창(社倉)을 세웠다. 이때 율곡은 대장간을 차렸는데 호미, 낫 같은 농기구를 스스로 만들어서 판매했다. 워낙 청렴하게 산 터라 그토록 높은 관직에 있었지만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밥은커녕 죽도 먹기 어려워지자 기쁜 마음으로 내린 결단이었다. 조선 최고의 학자이자 왕의 스승이자 천재 저술가인 사람이 사대부들이 천하다고 경멸하는 대장간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풀무질을 하고 쇠를 두들기고 벼리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그것도 기쁨과 행복과 감사에 젖어서 그렇게 하는 모습을 그려보라.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인문고전 독서가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감사요, 기쁨이요, 사랑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여기서 인문고전은 자신의 학문을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하고, 제자들을 길러서 나라를 책임지는 인재로 만들고, 백성들을 보살피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설령 남들이 천하다고 하는 일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읽는 것이라는 율곡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다.

 

1582년 정월에 율곡은 대제학 겸 이조판서가 되었다. 이어 형조판서와 의정부 우찬성 등을 거쳐 병조판서에 임명됐다. 어느 날 북방에서 여진족 2만 명이 함경도 종성(鍾城)에 침범했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병조판서 율곡은 즉시 무관들을 소집해서 대책을 세웠다. 그는 해박한 군사지식을 바탕으로 작전을 짜고 지휘관들을 이끌고 병사들을 통솔했는데, 그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장군들조차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여진족의 난을 보기 좋게 평정한 율곡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중국과 일본의 정세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여진이나 왜의 대병력이 조선에 쳐들어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율곡은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 내용을 ‘시무육조’를 담아서 왕에게 올렸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안에 큰 전란이 일어날 수 있으니 10만 명의 병사를 길러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율곡은 『성학집요』에서 『논어』에 나오는 “「시경」의 시 300편을 다 외운다 해도 정치를 맡겼을 때 통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보냈을 때 단독으로 대처할 수 없다면 비록 시를 많이 외운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라는 구절을 인용해서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독서는 무의미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인문고전은 무슨 일이든 설령 자신의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일지라도 최고 수준으로 해낼 수 있는 기본적인 두뇌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그리고 그 능력을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조국을 강대국들의 침탈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읽는 것이라는 율곡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다.  

1584년 정월 14일, 왕으로부터 북방 순찰의 임무를 부여받은 순무어사(巡撫御使) 서익(徐益)이 율곡의 집에 찾아와서 조언을 구했다. 병석에 누워 있던 율곡은 자신을 만류하는 가족들과 제자들에게 “내 몸은 다만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것이니 나라의 대사가 달린 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만일 이로 인해 내 병에 더 깊어진다면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라고 대답하고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아우 우에게 북방의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구할 수 있는 방책이 담긴 ‘육조방략(六條方略)’을 불러주고 받아 적게 했다. 이로 인해 잠시 차도를 보였던 율곡의 병은 돌이킬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튿날인 정월 16일, 율곡은 하늘로 돌아갔다. 차갑게 식은 율곡의 몸은 놀랍게도 남의 수의를 빌려 입고 있었다. 평생 청렴하게 산 것을 넘어서 녹봉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퍼주면서 살았던 율곡인지라 수의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율곡이 스무 살 때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 지은 『자경문自敬文』의 핵심을 정리한 것이다.

 

一, 뜻을 크게 갖고서 성인(聖人)의 삶을 따른다.

一, 마음이 안정된 사람은 말이 적으니, 말을 적게 한다.

一, 마음이란 살아 있는 것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정신을 한 데 모으고 담담하게

     그 어지러움을 살핀다. 그렇게 마음공부를 계속하다보면 마음이 고요하게 안정되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一, 홀로 있을 때 헛된 마음을 품지 않는다. 모든 악은 홀로 있을 때 삼가지 않음에서

    비롯되니, 마음속에서 올바르지 않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一, 앉아서 글만 읽는 것은 쓸데없다. 독서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일이 없으면 그만이겠지만, 일이 있을 땐 옳고 그름을 분간해서 합당하게 처리한 뒤

     글을 읽는다.

一,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는다. 일을 할 때 대충 편하게 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一, 해야 할 일은 모든 정성을 다하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은 마음속에서부터 끊는다.

一, 불의한 일을 단 한 번 하고, 무고한 사람을 단 한 명 죽여서 천하를 얻을 수 있더라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一, 누가 나에게 악을 행하면 나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돌아본 뒤 그를 감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一, 가족들이 착하고 아름답게 변화하지 않는 것은 내 성의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나 자신을 돌아본다.

一, 몸에 질병이 있거나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아니면 눕지 않는다.

      비스듬히 기대지도 않는다.

一, 공부는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니 서두르지도 늦추지도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로, 율곡의 삶은 『자경문』을 삶의 지침으로 삼기 전과 후로 나뉘는 것 같다. 『자경문』 이전의 율곡은 그저 천재일 뿐이다. 허나 『자경문』 이후의 율곡은 성인(聖人)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율곡의 『자경문』이 새롭게 인문고전 독서를 시작하는 모든 이의 『자경문』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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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지성 작가의 『인문고전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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