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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26화. 연재를 마치며_이지성 작가

이뿐냉이 2010. 9. 15. 10:22

 제26화. 연재를 마치며

 

 

그동안 스무 권 넘는 책을 썼지만 이번처럼 힘들게 쓴 기억은 없다. 지난 14개월 동안 매일 거인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늘 포기하고 싶었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만큼 기쁨도 컸다. 글을 쓰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조카 다인이가 태어났고, 이사를 두 번 했고, 여자 친구와 이별하고 오랜 시간 암흑 속에 있었고, UFO와 건담에 심취했고, 말세론과 세계정부 음모론에 깊이 빠져들었다. 운전면허를 딴 지 16년 만에 차를 샀고, 심플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자전거도 한 대 샀다. 날라리 신자를 벗어나고자 교회 정착 시도를 여러 번 해보았지만 나쁜 짓을 좀더 많이 하고 싶다는 마음속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기분이 주체 못 할 정도로 울적해지면 이제는 기도를 하자, 라고 자신과 굳게 약속했건만 매번 술을 마시거나 애매한 사람들을 불러내서 괴롭히는 짓만 했다. 반성한다. 앞으로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처럼 살아야겠다.


책을 쓰면서 우리나라 인문고전 독서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알게 됐고, 가슴이 몇 번 심하게 아팠다. 조선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문고전 독서가들이 활동했던 나라다. 하지만 세종, 정조 때를 제외하고는 그리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 어찌어찌해서 겨우 조정에 등용되면 자신의 뜻을 펼치기도 전에 온갖 중상모략에 시달리다가 쫓겨났고 심지어는 유배되거나 처형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조선의 천재들은 그에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초야(草野)에 묻혀 살면서 위대한 사상을 전개해나갔고, 나라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으며, 백성들의 인권과 행복을 위해 분투했다. 그리고 나라에 위급한 일이 닥쳤을 때는 모든 재산을 팔아 의병을 일으켰고,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일에 목숨까지 바쳤다. 인문고전 독서 전통이 사라진 오늘날 우리나라에 그런 천재, 그런 의인들이 있는가.
호남 최고 명문가 장흥 고(高)씨 가문의 제봉 고경명은 명종의 총애를 받았던 시인이자 고위 문관이었다. 그는 과거시험관으로도 일한 적이 있는데, 당시 그가 장원으로 뽑은 이가 송강 정철이다. 스물일곱 살에 과거에 장원급제한 뒤 사헌부 지평, 홍문관 교리, 순창 군수, 승문원 판교 등을 거쳐 동래부사로 일하다가 낙향하고 동양 고전에 묻혀 살던 그에게 어느 날 왜적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군인들은 물론이고 왕까지 도망을 치던 그때, 제봉은 그 유명한 ‘마상격문(馬上檄文)’을 띄워 6천여 명의 의병을 모았다. 그리고는 가장 위험한 전쟁터로 달려가서 순국했다. 그때 그의 나이 예순이었다.


호남의 5대 시인이었던 제봉의 첫째 아들 준봉 고종후와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을 하던 둘째 아들 학봉 고인후도 왜적과 싸우다가 순국했다. 제봉의 동생 고경신, 고경형도 순국했다. 정묘호란 때는 제봉의 손자 고부립이 의병을 일으켰다. 갑오경장 이후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 되자 이번에는 학봉 고인후의 11대손 녹천 고광순이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10년 넘게 위대한 전쟁을 치르다가 1907년, 제봉 고경명처럼 예순의 나이로 순국했다. 같은 일가인 청봉 고광수는 천 석이 넘는 재산을 팔아서 녹천의 의병부대에 기부했고, 그 자신도 선봉장으로 활약했다.
임진왜란, 정묘호란, 조선 말기, 대한제국 시절, 일제 강점기 때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의병장이 되어 왜적에 맞서 싸운 장흥 고씨 가문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정의로운 명문 가문들의 공통점은 인문고전 독서교육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백범 김구, 단재 신채호, 우당 이회영, 약산 김원봉 같은 독립 운동가들의 공통점도 인문고전 독서가라는 것이다. 즉 일제에 온몸으로 맞섰던 우리나라의 정의로운 명문 가문들과 독립 운동가들의 위대한 정신은 동양 고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제는 그 사실을 잘 알았던 것 같다. 1910년 무단통치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동양고전을 가르치는 성균관과 전국의 서당을 폐지했던 것을 보면. 그리고 프러시아 공교육 시스템을 본받아 스스로 사고(思考)할 줄 모르는 저급 노동자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교육령(朝鮮敎育令)’을 강제로 반포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즉 그들은 자신들에게 반하는 정의로운 명문 가문들과 독립 운동가들이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없애고, 우리 민족을 통째로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름 아닌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없애고 대신 프러시아 식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일제의 그 악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일제의 패망과 함께, 비록 초,중,고는 그렇지 못했지만 대학에서는 인문고전 독서의 전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인문고전을 읽었고 인문학을 사랑했다. 그들은 거기서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실 이것은 서양이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경제 부흥 이상의 큰 기적이다. 우리나라가 1961년부터 1993년 2월까지 군인들이 통치하던 군사독재국가였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대학에서조차 인문고전 독서가 사라졌다. 이 암울한 사태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다만 바랄뿐이다. 이 부족한 책이 우리나라에 인문고전 독서의 전통이 되살아나는데 제발 손톱만큼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마지막은 좀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결국 또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말았다. 어려운 이야기들만 내뱉고 말았다. 나는 이게 문제다.
비록 날라리 신자지만 책을 쓰다가 절망스러운 벽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책을 쓰면서 이토록 간절하게 기도를 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 앞을 가로막던 홍해들을 갈라주시고 텅 빈 원고지라는 광야 길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감사드린다. 내가 이 책으로 어떤 영광을 받는다면, 그것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것입니다.
이 책을 위해 매일 나보다 더 뜨겁게 기도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우리 아버지는 심지어 눈보라가 몰아치던 겨울에도 밤마다 산에 가서 기도하셨다. 어머니도 매일 아픈 몸을 이끌고 기도하셨다. 두 분에 대한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메일과 쪽지 등으로 격려를 해주신 Daum 팬까페 회원들과 싸이월드 미니홈피 일촌들 그리고 Daum 블로그에서 연재를 할 때 격려의 댓글과 방명록 등을 달아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특히 원고 쓰다가 죽겠다며 툴툴거릴 때마다 무한한 신뢰와 격려를 보내준 나의 멘티 1호이자 영어선생님이자 팬까페 회장인 정회일, Daum 블로그에 연재글이 올라갈 때마다 출력해서 예쁜 책으로 만드는 정성을 보여준 최장수 팬 강지혜, 가끔 생각지도 못한 문자를 보내줘서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격려해준 황희철, 팬까페에 인문고전 독서법 블로그 홍보를 깜찍하게 해준 최연화에게 이 지면을 빌어 “very very thank you!”라고 말하고 싶다. 또 회일의 주도 아래 깜짝 응원파티를 열어줘서 나를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게 한 진하정, 박윤수, 양승옥, 현수정, 이희정, 이민주, 유성은, 정진석에게도 very very thank you!”를 전하고 싶다. 문학동네 식구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3년을 기다려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감동이다. 게다가 원고가 고작 절반 정도 쓰여 졌을 때부터 나보다 더한 애정을 쏟아주었다. 그 애정과 신뢰가 큰 힘이 되었다.
퇴계 이황의 글로 마무리를 하고 싶다. 이 책의 독자들이 인문고전을 읽어서 두뇌가 변화하고 천재가 되고 위인이 되는 것도 좋겠지만 무엇보다 퇴계 이황처럼 여유롭고 자유로운 마음을 가진 독서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비록 산에서 살고 있지만 오랜 병을 앓고 있는 터라 책을 마음껏 읽지 못하고 있다.
마음이 울적하여 호흡을 조절하다보면 몸이 가뿐해지고 정신이 상쾌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우주를 굽어보고 우러러본다. 그러면 감개(感慨)가 저절로 일어난다.
나는 책을 덮고 지팡이를 손에 잡고 밖으로 나간다.
난간에 기대서 연못도 구경하고, 단(壇)에 올라 사(社)를 찾기도 하고, 동산을 돌아보며 약초를 심기도 한다.
혹은 돌 위에 앉아서 샘물을 희롱하기도 하고, 대(臺)에 올라서 구름을 바라보기도 하고, 여울에서 고기를 구경하기도 하고 배에서 갈매기와 친하기도 한다.
그렇게 발길 가는 대로 시름없이 노닐다가 또 좋은 경치를 만나면 흥에 취해 마음껏 즐긴다.
집에 돌아오면 고요한 방에 책이 가득 쌓여 있다.
나는 책상을 당겨서 잠자코 앉아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리(理)를 사색한다.
때로 마음에 얻는 바가 있으면 흐뭇한 나머지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
혹여 얻지 못하면 친구에게 물어보고 그래도 알지 못하면 더욱 분발하여 사색한다.
하지만 억지로 통하려 하지 않고 마음 한쪽에 밀어두었다가 가끔 끄집어내서 허심탄회하게 사색하고 저절로 깨달아지기를 기다린다.
오늘도 이러하고 내일도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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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지성 작가의 『인문고전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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