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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22화. 실전: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위대함을 향한 열정_이지성작가.

이뿐냉이 2010. 9. 15. 10:20

제22화. 실전: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_위대함을 향한 열정

 

‘백독백습(百讀百習)’은 조선의 기본적인 인문고전 독서법이었다. 전국의 서당에서 철썩 같이 지켰던 독서법이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서당에서 배운 절대 다수의 아이들은 ‘황홀한 기쁨’을 동반한 ‘깨달음’이 있는지조차도 몰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교사들이 그 경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깨달음’은 누구에게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비유하면 그것은 키스와 같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입술로 하나 되는 그 경지를 과연 말이나 글로 배워서 알고, 느끼고, 깨달을 수 있을까? 마찬가지다. 인문고전의 저자와 하나 되는 경지는 가르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앞으로 우리나라에 어떤 천재 독서교육 프로그램이 나타나더라도 흥분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단지 ‘깨달음’의 문으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화살표에 불과한 것이니까 말이다.

 

내가 말하는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천재들의 진정한 독서법이 아니다. 그것은 이지성이라는 초보자가 바라본 경지에 불과하다. 즉 내가 말하는 천재 독서법은 천재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예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에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을 소개하면서 많이 고통스러웠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 부분을 아예 쓰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던 적도 있었다. 진도가 여기까지 나가게 되면 나는 필연적으로 앞에서 마치 천재들과 비슷한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인 양 잘난 척했던 나의 독서가 사실은 얼마나 초라하고, 우습고, 바보 같은 것인지를 고백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천재들의 ‘깨달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천재들의 깨달음이라는 ‘달’이 있다. 어느 날 나는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여 그 손가락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바로 이 글이다.”

 

퇴계 이황의 어머니는 싱글맘이었다. 그녀는 직접 농사를 짓고 누에를 쳐가면서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시켰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 퇴계는 『논어』를 배웠다. 스승은 퇴계가 각 구절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할 때라야 비로소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첫째 권을 마치면 반드시 전부 외운 뒤에 둘째 권으로 넘어가게 했다. 둘째 권을 마치면 첫째 권부터 다시 전부 외우게 했다. 스승이 그런 독서를 시킨 이유는 오로지 퇴계의 ‘깨달음’을 위해서였다. 어느 날 퇴계는 책을 읽다가 ‘리(理)’라는 글자를 발견하고 사색에 들어갔다. 그리고 두뇌 속에서 깨달음의 빛이 섬광처럼 번쩍이는 것을 체험했다. 다음날 퇴계는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무릇 모든 일에 있어서 마땅히 옳게 행해야 하는 것이 리(理)이지요?” 스승은 너무도 기쁜 나머지 무릎을 치면서 대답했다. “맞느니라. 네가 마침내 글자의 의미를 깨달았구나. 너는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다. 더욱 열심히 독서하도록 하여라.” 퇴계는 스승의 지도로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독서를 계속했고, 후일 어린 시절의 깨달음은 비교가 되지 않는 위대한 ‘깨달음’을 얻었고, 조선을 대표하는 천재 중의 천재가 되었다.

 

다산 정약용은 인문고전 독서교육은 문심혜두(文心慧竇)를 여는 것 즉 아이로 하여금 글 쓴 이의 마음을 깨닫게 해서 두뇌 속에 숨어 있는 지혜의 문을 활짝 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또 만일 문심혜두를 열지 못한다면, 일만 권의 책을 읽게 하더라도 헛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다산은 문심혜두를 여는 독서법을 통해 그 자신이 천재 중의 천재가 되었고, 자신의 제자들 역시 조선의 천재들로 키워냈다.

 

다시 천재들의 ‘깨달음’으로 돌아가자. 내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그냥 죽도록 ‘사색’만 한다고 해서 ‘깨달음’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특별한 두 가지 ‘마음’이 있어야 한다. 바로 ‘위대함을 향한 열정’과 ‘사랑’이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샤를 드골은 인문고전 독서교육의 전통을 수백 년 넘게 지켜온 명문가 중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섯 살이 되기도 전부터 역사고전을 읽었고, 열 살부터는 플라톤, 칸트, 니체, 괴테 등이 저술한 철학․문학고전을 읽었는데 마치 오늘날의 십대들이 인터넷 게임에 빠져드는 것처럼 그렇게 광적으로 독서했다. 십대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취미가 그리스 및 라틴 원전 구절들을 암송하는 것이었다니 그의 인문고전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해볼 수 있겠다.

 

샤를 드골의 삶은 그가 남긴 “위대해지려고 각오한 자만이 위인이 될 수 있다”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위대함을 향한 열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병장으로 졸업했다. 사관학교의 규칙을 대부분 무시하고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너무 많은 벌점을 받은 나머지 장교가 될 성적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그를 가르쳤던 교수는 후일 이렇게 말했다. “드골이 학교에서 제멋대로 행동했던 이유는 간단했지. 그 친구는 참모총장이 되는 것 말고는 전혀 관심이 없었거든.” 그러니까 드골은 생시르 육군사관학교의 규칙들이 참모총장이 아닌 하급 지휘관을 기르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 일화가 샤를 드골의 위대함을 향한 열정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샤를 드골에게는 특별한 습관이 있었다. 그는 열 살 때부터 매일 밤 침대에 들기 전에 다음 의식을 치렀다. 일기장에 적어놓은 “하나님이시여, 나를 위대하게 사용하옵소서”라고 요약되는 기도를 올리는 것과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 드골은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믿었다. 그의 “나는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믿음은 평생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날이 갈수록 더욱 굳건해졌다. 나는 드골의 그런 믿음이 그의 인문고전 독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즉 샤를 드골의 ‘위대함을 향한 열정’이 위대한 고전을 남긴 천재들의 마음과 통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통함’이 그의 인생에 기적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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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지성 작가의 『인문고전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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