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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19화. 실전, 천재들의 독서법_반복독서, 필사, 암송_이지성 작가.

이뿐냉이 2010. 9. 15. 10:18

제19화. 실전, 천재들의 독서법_반복독서, 필사, 암송

 

 

반복독서

 

반복독서는 천재들의 독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자 천재들이 가장 강조한 독서법이기도 하다. 공자는 주역의 이치를 깨우치기 위한 방법으로 반복독서를 택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반복해서 읽었던지 죽간(오른쪽 그림)을 묶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떨어졌다고 한다.

주자는 자신의 독서법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다른 사람이 한 번 읽어서 알면 나는 백 번을 읽고, 다른 사람이 열 번 읽어서 알면 나는 천 번을 읽는다.”

세종대왕은 『구소수간歐蘇手簡』을 천백 번 반복해서 읽었다.

영조대왕은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독서는 다독이 최고다. 나는 일찍이 ‘소학’을 백 번 넘게 읽었다. 하여 지금도 눈을 감고 암송할 수 있다.” 

정조대왕(왼쪽 그림)은 주자의 “맹자가 내 안에 들어앉게 하려면 수백수천 번 읽으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라는 말을 독서 좌우명으로 삼고서 맹자를 읽었다. 『주자절요』를 읽을 때도 수십 번 반복해서 읽었고 중요한 내용을 따로 뽑아서 책으로 만들었다.

율곡 이이(오른쪽 그림)는, 친구 성혼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한 해에만 『논어』 『중용』 『대학』 『맹자』를 각기 아홉 번씩 반복해서 읽어 놓고도 또다른 고전인 『시경』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서애 류성룡은 열여덟 살 때 『맹자』를 읽기 위해 절에 틀어박혔는데 몇 달 동안 스무 번 넘게 읽었고 마침내 『맹자』를 전부 외워버렸다고 한다. 그는 이듬해에는 고향에 내려가 『춘추』를 서른 번 넘게 읽었는데 그때부터 비로소 문장을 짓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은 맹자를 일천 번 넘게 읽었는데, 앞부분은 수천 번 읽었다고 전해진다.

고봉 기대승은 『고문진보』를 수백 번 읽었고 마침내 전부 외워버렸다. 그는 어떤 고전이든 한 번 손에 잡으면 완벽하게 암송할 수 있을 때까지 몇 백 번이고 읽는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지봉 이수광은 이렇게 말했다. “성인들의 글이 적힌 책을 반복해서 읽고서야 비로소 도(道)의 근원을 파악했고, 마음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형암 이덕무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어린 시절 아침에 40~50줄의 글을 배우면 저녁때까지 그것을 50번씩 반복해서 읽었다. …… 병이 심하게 들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그렇게 했다. 덕분에 공부에 큰 발전이 있었다.”

순암 안정복은 제자들에게 성호 이익의 제자 신후담의 “성현(聖賢)의 글은 1만 번은 읽어야 비로소 그 의미를 환하게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을 독서 원칙으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단테(왼쪽 그림)는 유랑 생활 내내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을 반복해서 읽었다.

아이작 뉴턴은 유클리드의 『기하학』과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의 각 구절들을 이해가 될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라이프니츠(오른쪽 그림)는 단순한 천재가 아니다. 그는 정치, 종교, 역사, 문학, 논리학, 형이상학, 사변철학, 수학, 물리학, 법학 등 거의 전 영역에 걸쳐서 천재적인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부모나 교사 등의 권유로 인문고전 독서를 시작한 대부분의 천재들과 달리 스스로 인문고전 독서를 시작한 유별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은 오로지 독서로 인해 얻어진 것이라 고백한 바 있는데, 그가 세상에 공개한 독서법은 매우 간단한 것으로 정치, 종교, 역사, 문학 등 각 분야의 대표적인 책을 그 이치를 터득할 때까지 반복해서 읽는 것이었다.

헤겔의 인문고전 독서법도 반복독서였다. 그는 특히 플라톤과 소포클레스 같은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과 루소, 칸트, 피히테의 저작을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자신의 사상을 형성해나갔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서 엄청난 부피의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발견하고서 틈날 때마다 반복해서 읽었다. 이후 ‘반복독서’는 그의 중요한 독서습관으로 자리잡았다.

19세기에 활동한 천재 설교가 찰스 스펄전은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백 번 이상 읽었다.

천재 작곡가 바그너는 1천 페이지가 넘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그 책을 만난 첫해에만 네 번 읽었고, 그 뒤로 평생 반복해서 읽었는데 결국 전부 외워버렸다고 한다.

천재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도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40년 동안 반복해서 읽었다.

 

 

필사

 

천재들의 필사를 살펴보면 그들이 인문고전의 저자와 어떤 정신적 교감 같은 것을 나누지 않았나를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필요나 의무감 또는 욕심 때문이 아닌 벅찬 감격과 떨림 그리고 기쁨과 설렘 속에서 필사를 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너무 좋아서, 마치 연애편지를 쓰듯이 필사를 했다.

천재들이 가장 선호한 필사 방식은 원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도 남김없이 그대로 베껴 쓰는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삼국지』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제갈공명, 서양 천재의 대명사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동아시아 최고의 유학자인 퇴계 이황 등이 이 방법을 따랐다. 방법은 간단하다. 원전을 매일 적게는 몇 줄 혹은 몇 쪽 많게는 십수 쪽 혹은 수십 쪽씩 베껴 쓴다. 마침내 한 권을 완전히 베껴 쓰면 다음 원전으로 넘어간다. 이게 전부다.

주의할 점은 번역서가 아닌 원전을 베껴 썼다는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천재들 중에서 인문고전을 번역서로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원전 지상주의자들이었다. 이는 로저 베이컨의 “원전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원전과 관련된 학문 전부를 이해한다는 것과 같다”라는 말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만일 원전의 언어를 모르면 천재들은 어떻게 했을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비롯한 여러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를 연구해보면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원전에 사용된 언어를 새로 배웠다.

천재들은 자신이 읽은 부분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필사하는 방식도 선호했다. 키케로, 아이작 뉴턴, 존 스튜어트 밀, 프리드리히 니체, 퀴리 부인, 자와할랄 네루, 윈스턴 처칠 등이 이 필사법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방법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표시를 하거나 밑줄을 그으면서 책 한 권을 읽은 뒤 옮겨 적거나 중요한 부분을 발견하는 즉시 옮겨 적는 것 그리고 초서(鈔書), 세 가지가 있다.

초서란 인문고전에서 중요한 부분을 뽑아서 옮겨 적은 뒤 이를 주제별로 분류해서 편집한 뒤 책으로 만드는 것인데, 조선의 천재들이 취한 기본적인 인문고전 독서법이었다. 정조대왕은 『일득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즐겨한 독서법은 초서였다. 내가 직접 필사해서 책을 이룬 것만 해도 수십 권에 달한다. 그 과정에서 얻은 효과가 매우 크다. 그냥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산 정약용(오른쪽 그림)은 매일 새벽마다 고전을 몇 쪽씩 베껴 쓰는 일을 황홀한 취미로 삼았던 사람이다. 그는 아들 학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 겨울부터 내년 봄까지 『상서尙書』와 『좌전左傳』을 읽도록 하거라. …… 『고려사』 『반계수록』 『서애집』 『징비록』 『성호사설』 『문헌통고』 등도 읽어보고, 그 내용 중 중요한 것을 발견하면 초서하도록 하여라.” 필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의심을 가질 수도 있다. “책을 베껴 쓰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말인가, 과연 그런 방법이 효과가 있을까?”

다산의 두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아버지의 조언을 의심했고, 급기야 편지로 물었다. 과연 그게 괜찮은 방법이냐고. 다산은 이렇게 답했다. “너희들이 어찌하여 초서의 효과를 의심하여 그런 말을 하느냐. 어떤 책이든 손에 잡으면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대목만 가려서 뽑고 나머지는 눈길도 주지 말거라. 그러면 비록 백 권의 책이라도 열흘 공부로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제자로 받아들인, 열다섯이 되도록 글자도 몰랐으나 다산의 체계적인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통해 천재적인 지식인으로 성장한 치원 황상(黃常)이 나이 일흔이 넘어서도 한결같이 실천한 인문고전 독서법도 바로 초서였다. 치원 황상 또한 초서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늘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게 과연 효과가 있습니까?”

뉴턴과 헤겔의 필사는 초서와 약간 유사한 면이 있다. 뉴턴의 독서노트는 45개의 소제목을 가지고 있었다. 소제목은 물질, 장소, 시간 등 자신의 관심사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었다. 뉴턴은 책을 읽다가 각 소제목에 해당하는 부분이 나오면 노트에 필사를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함께 적었다. 그리고 그 노트를 보면서 자신의 사상을 형성해나갔다. 

헤겔(왼쪽 그림) 또한 뉴턴처럼 자신만의 필사노트를 만들었다. 그의 필사노트는 자신의 관심사가 반영된 각 항목별로 나뉘어 있었는데 독서하다가 각 항목과 관련된,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 부분을 발견하면 즉시 옮겨 적었다. 헤겔은 이 작업을 매우 중요시했는데 이를 통해 천재들이 사고하는 방식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고로 말하면 헤겔은 필사노트를 마치 보물처럼 평생 간직했고, 수시로 들춰보았다고 한다. 

진정한 필사는 종이 위에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영혼 속에 새겨 넣는 것이리라. 인문고전이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된 상태이리라. 키케로의 서한집을 전부 필사한 것으로 유명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페트라르카는 『나의 비밀』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다가 자네의 영혼을 뒤흔들거나 유쾌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문장을 마주칠 때마다 자네의 지적 능력만을 믿지 말고 그것을 외우도록 노력해보게나. 그리고 그것에 대해 깊이 명상하여 친숙한 것으로 만들어보라고. 그러면 어쩌다 고통스런 일이 닥치더라도 자네는 고통을 치유할 문장이 마음속에 새겨진 것처럼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걸세.”

 

 

암송

 

페트라르카는 필사의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신이 인문고전 필사광이었을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피렌체 시를 아예 인문고전 필사의 도시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필사의 천재가 권유하는 최고의 필사는 영혼을 뒤흔드는 문장들을 마음속에 새기는 것이다. 그 방법은 암송 즉 외우는 것이다.

사실 암송은 천재들이 즐겨 사용한 독서법이다. 중국 송나라의 대문호 구양수는 300자 암송 독서법을 권한다. “내가 글자 수를 세어보았더니 『효경』 1,903자, 『논어』 1만 1,750자, 『맹자』 3만 685자, 『주역』 2만 4,107자, 『서전』 2만 5,700자, 『시경』 3만 9,234자, 『예기』 9만 9,010자, 『주례』 4만 5,806자, 『춘추좌전』 19만 6,845자였다. 이 책들을 매일 300자씩 외우면 4년 반 만에 끝낼 수 있다. 조금 우둔해서 반으로 줄여서 외운다고 해도 9년이면 충분하다.”

칸트는 엄청나게 긴 라틴 고전 작품들을 단 한 줄도 틀리지 않고 암송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링컨은 데모스테네스, 키케로, 셰익스피어 등의 작품을 암송하는 것을 평생 즐거운 취미로 여겼다. 처칠은 어릴 적부터 고대 그리스 문학 작품을 줄줄 암송했다. 십대 시절에는 수천 쪽에 달하는 역사고전 『로마제국쇠망사』를 반복해서 읽었는데 덕분에 대부분의 핵심구절들을 외울 정도까지 되었다고 한다.

천재들의 필사법을 연구하다보니 놀라운 사실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제갈량 즉 제갈공명이 소설 속의 인물인 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엄연히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이다. 그는 인문고전 독서의 전통을 지닌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숙부로부터 유학을 배웠다. 그러다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융중의 산골로 들어가서 스물일곱 살이 될 때까지 인문고전에 파묻힌 삶을 살았다. 그 기간에 그는 천재로 변화했고, 그 소식은 유비의 귀를 사로잡았다. 제갈량은 유가, 법가, 도가, 병가, 종횡가 등 제자백가의 책을 모두 섭렵했는데 그의 대표적인 독서법이 바로 필사였다.

제갈량은 유비의 아들 유선의 교육에 잠깐 관여한 적이 있는데, 이때 『신자』 『한비자』 『관자』 『육도』 네 권을 직접 손으로 필사해서 유선에게 보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해지는 도중에 사고가 나서 유실되었다고 한다. 나는 생각해본다. 제갈량이 과연 유선에게만 그렇게 했을까라고.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자녀에게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덕분에 아들 제갈량은 오나라의 대장군과 태자의 태부(太傅)를 겸임하는 당대의 큰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모가 인문고전을 직접 필사해서 아이에게 읽힌 사례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 서포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 등의 사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현대의 인물로는 케네디의 어머니 로즈 여사를 들 수 있다.

제갈량은 촉나라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었다. 정치, 군사, 행정 등 각 방면의 일들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비자』의 원전은 55편으로 10만자가 넘는다. 『관자』는 우리나라 번역본의 페이지가 1천 쪽을 넘는다. 인문고전 독서교육에 대한 불타는 신념을 갖고 있지 않고서야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작업을 제갈량은 해냈다. 서포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는 참으로 가난한 과부였다. 그녀는 책을 살 돈이 떨어지면 책방 주인에게 사정해서 책을 빌린 뒤 그것을 밤새도록 일일이 베껴 쓴 뒤 아이에게 읽혔다. 아이에게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마음 깊이 담아두고 늘 되새겨야 할 사례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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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지성 작가의 『인문고전 독서법』
글쓴이 : 인문고전 독서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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