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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17화. 천재들의 ‘마음’을 깨닫는 일 _ 이지성 작가.

이뿐냉이 2010. 9. 15. 10:16

 

제17화. 천재들의 ‘마음’을 깨닫는 일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을 소개하기 위해 나는 수백 권의 책을 조사했다. 그리고 그 책들에 나오는 천재들의 독서에 관한 부분을 전부 복사했다. 복사자료를 책상 위에 쌓아놓으니 그 키가 천장에 닿을 정도였다. 그것을 열흘에 걸쳐 정리했더니 책 열 권 분량으로 줄어들었다.

 

나는 일종의 모범답안을 만들고 싶었다.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들을 정리해서 누구나 쉽게 참고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10가지 대(大) 요소들과 10가지 소(小)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을 다시 A4 12매 분량으로 간결하게 압축할 수 있었다. 이제 장전은 끝났다, 포를 쏘기만 하면 된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글과 관련된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음을 완벽하게 비운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펜을 들었다. 하지만 이상한 글들만 나왔다. 나는 오랜만에 나의 무능력과 한계를 절감했고, 그것은 방황으로 이어졌다.

 

나는 늘 그렇듯이 아픈 얼굴로 숲속을 헤매기 시작했다. 나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었던 것은 허공에 붉은 점처럼 찍혀 있던 장미들이었다. 나는 우울한 차림으로 집을 나가 근처 공원 벤치 위에 있는 장미넝쿨 밑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가 까닭 모를 눈물을 왈칵 쏟곤 했다. 어느 날 밤엔 샛강에 쓰러져 있기도 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숲을 나와서 한참을 걷다보니 온통 초록으로 물든 샛강이 있었고, 샛강 옆에 난 작은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다가 피곤해서 잠깐 나무 밑에 앉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한밤중이었고, 나는 볼품없이 쓰러져 있었다. 시커먼 강물 위로 별들이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별들처럼 투신하고픈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더니 자제가 되었다. 이제 기도뿐인가, 나는 그 한마디를 밤의 허공에 내뱉고는 새벽이 올 때까지 샛강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나는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당신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많은 자료를 조사했고, 그 결과 세계 최초로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을 정리해냈다, 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뭐 이런 마음으로 쓰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욕심에 가득 차 있었으니 글이 제대로 나올 수 있겠는가. 물론 나는 욕심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얼마든지 현란한 글쓰기 기술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대 위에 온갖 화려한 자료들을 올려놓고 독자들을 정신 못 차리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편이 독자들의 박수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혼이 담기지 않은 글로 누구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는 심각하게 반성했고 마음을 투명하게 비우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천재들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 같은 소인배가 군자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마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마음’에 살짝 가닿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육체는 시간과 공간을 달리할지라도 마음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으니까. 도대체 천재들은 어떤 마음으로 인문고전을 읽었던 것일까. 나는 책에 기록된 그들의 삶과 글과 말을 되씹고 되씹고 또 되씹었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천재들의 마음을 기억해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세종대왕을 생각해보자. 그의 인문고전 독서법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치열함으로 요약된다. 그의 독서법은 백독백습(百讀百習), 즉 100번 읽고 100번 필사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가 왕자 시절에 동양고전을 백독백습하다가 병에 걸리기까지 했다는 일화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왕위에 오르고서도 그의 치열한 독서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는 왕이 신하들과 함께 인문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경연을 가장 많이 연 임금 중 한 명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태조가 23회 태종이 80회 열었던 경연을 1,898회나 열었다. 249권에 달하는 『자치통감』의 경우 경연에서 3년 동안 강독했을 정도이다.

 

세종대왕은 왜 그토록 힘들게 독서했던 걸까? 나는 그가 백성을 애타게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세종이 인문고전 연구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집현전 학사들을 모아놓고 한 다음 말에서 그 확신을 얻었다.

“내 유일한 소망은 백성들이 원망하는 일과 억울한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농사짓는 마을에서 근심하면서 탄식하는 일이 영원히 그치는 것이요, 그로 인해 백성들이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내 지극한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우리 모두 목숨을 버릴 각오로 독서하고 공부하자. 조상을 위해, 부모를 위해, 후손을 위해 여기서 일하다가 같이 죽자.”

 

세종대왕은 무엇보다 나라를 이끌고 가는 사람들이 최고가 되지 못하면 백성들에게 최고의 정치를 베풀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최고가 되지 못하면 신하들을 제대로 이끌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먼저 자신을 다음으로 신하들을 그토록 뜨거운 독서의 장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사들 앞에서 했던 말을 실제 정치로 증명했다. 그는 오직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유교에 찌든 사대부 지식인들의 그 많은 반대를 무릅써가면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자인 한글을 창조했다. 어디 그뿐인가. 정치, 경제, 과학, 의학, 군사, 법률, 학문, 농업 등 백성들의 삶과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에서 백성을 위해 분투했고,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왕도 따라오지 못할 찬란한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다. 심지어는 여자 노비들을 위해 100일에 달하는 출산휴가제도를 만들었고, 같은 노비인 남편도 한 달 동안 아내를 돌볼 수 있도록 했다. 재위기간 내내 고아, 노인, 병자, 죄수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기본권을 직접 챙겼음은 물론이다.

 

한편으로 세종대왕은 사람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상태로 하는 인문고전 독서는 독서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위대한 고전을 지은 성인들의 마음을 알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오직 책의 내용에만 해박하려 한 당시 사대부들을 비판하면서 했던 다음 말에서 잘 드러난다. “오늘날 선비들은 말로만 경학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치를 궁극하게 밝히고 마음을 바르게 한 선비가 있다는 것은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다. 너희 선비들은 매일 경학을 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진짜 선비가 없는 것이냐!” 이런 세종대왕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에 깊이 담으려는 처절한 노력 없이 그저 세종대왕의 백독백습만 따라하면 그 사람이 과연 세종대왕 같은 천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지성의 인문고전 독서법’의 핵심은 천재들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백독백습을 비롯한 다른 모든 독서 기법들은 다만 천재들의 마음을 깨닫는 장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쓰는 작가이면서도 그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그 결과 본질인 ‘마음’은 잊어버리고 부록에 불과한 ‘독서기법’만 충실하게 나열하려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뻔했다.

 

당신은 나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들을 천재들의 마음에 가닿으려는 마음의 노력을 하면서 들어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당신은 천재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것이다. 두뇌가 혁명적으로 변화하는 놀라운 사건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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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지성 작가의 『인문고전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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