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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15회. 인문고전 독서가 주는 카타르시스-나의 이야기 _ 이지성 작가.

이뿐냉이 2010. 9. 15. 10:15

제15화. 인문고전 독서가 주는 카타르시스

-나의 이야기

 

내 방 책꽂이에는 인문고전이 가득하다. 그 책들을 볼 때마다 나는 열등감을 느낀다. 읽은 책보다는 읽지 못한 책이 더 많다는 사실, 어떤 책들은 구입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첫 페이지를 넘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책이 단 한 권도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좀더 내밀한 고백을 하자면, 나는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내가 ‘바보’라는 사실을 알았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한다는 것. 물론 이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일 수 있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것이므로. 나 역시 그런 함정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의 그런 생각은 독파하는 인문고전이 늘어나면서 저절로 사라졌다.

 

플라톤의 『소피스테스』를 읽었을 때의 일이다. 아마도 2002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없는 것은 있다’라는 소피스테스들의 주장이 틀리고 ‘없는 것은 있지 않다. 그러므로 없는 것은 없다’라는 플라톤의 주장이 맞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논박이 펼쳐지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무지 알.수.가.없.었.다. 그러나 이해하고 싶었다. 해서 책을 몇 차례 되풀이해서 읽고 따로 노트 정리를 하고 다시 종이 한 장으로 요약했다. 그 종이를 몇 달 동안 들고 다니면서 읽었다. 그러나 이.해.할.수.없.었.다. 나는 그만 왈칵 눈물을 흘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바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행스럽게도 플라톤의 위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론』 『소피스트적 논박』 『형이상학』을 읽고(물론 이 책들도 죽기 살기로 읽었고,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과 니체의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 그리고 칼 포퍼의 『파르메니데스의 세계』를 읽으니까 무슨 의미인지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참고로 말하면 내가 니체의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과 칼 포퍼의 『파르메니데스의 세계』를 손에 잡은 것은 2009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가 바보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권고로 인문고전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이 하나같이 나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소위 독서광이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나마 쉬운 플라톤의 초기 저작도 머리를 쥐어뜯어가면서 독서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 이렇게 난해한 책이 다 어딨어!” 몇몇은 “내가 책 좀 읽는다는 자부심 하나로 살았는데, 그 자부심이 플라톤 앞에서 처참하게 박살났다. 서양 철학고전의 세계를 알게 해준 이지성이 원망스럽다”라는 식의 말까지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칸트, 하이데거를 읽다가 “악!” 하고 소리를 지른 사람도 있었고, 열등감과 좌절감이 분노로 변한 나머지 책을 찢어버린 사람도 있었다. 눈물을 흘린 사람은, 매우 많다. 그들 중엔 의사, 약사, 판사, 변호사, 대학교수, 아나운서, CEO, 미스코리아, 슈퍼모델, 작가, 기자, 칼럼니스트, 평론가, 독서지도사, 독서법 강사, 독서 전문 기고가 등이 있었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혹시라도 인문고전을 읽다가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하고, 에베레스트 산이나 태평양 한가운데 고립된 것 같은 느낌을 얻더라도 당황스러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이 지극히 정상이라는 신호니까.

최근에 출간된 책들 특히 인문교양서와 경제경영서는 손에 너무 쉽게 잡히는데, 인문고전은 왜 그렇게 손에 잘 안 잡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책상 위, 운전석 옆 좌석, 가방, 침대 머리맡 등등 내 손이 자주 가는 곳에는 예외 없이 인문고전을 배치해놓았다. 그런데 내 손에는 다른 책이 들려 있을 때가 더 많다. 특히 만화책이. 한때 나는 그런 내 자신을 보면서 곤혹스런 감정을 느끼곤 했다. 이어 실망, 좌절, 분노, 슬픔 같은 감정에 빠져들곤 했다. 그러나 헤겔과 비트겐슈타인을 만나고 그런 감정으로부터 적잖이 자유로워졌다.

 

헤겔은 베스트셀러 소설광이었다. 그는 어떤 인문고전보다 당시 베스트셀러 소설가였던 요한 티모테우스의 글을 즐겨 읽었다. 아니 지인들의 걱정거리가 될 정도로 푹 빠져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왼쪽 사진)은 싸구려 탐정소설광이었다. 그는 제자이자 친구였던 말콤(N. Malcolm)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이렇게 말했을 정도였다. “자네로부터 탐정잡지를 받아보는 건 멋진 일이 될걸세. 요즘엔 그걸 구하기가 무척 힘이 드네. 마치 내 마음이 허기가 지는 기분이야. 탐정잡지 안에는 정신적인 비타민과 칼로리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네. ……만일 미국이 우리에게 탐정잡지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도 그들에게 철학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라네.” “정신 나간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탐정잡지를 최근에 다시 읽었을 때 나는 또다시 너무 좋아져서 진심으로 작가에게 편지를 써서 감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네.”

 

헤겔과 비트겐슈타인의 독서 취향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인문고전보다는 신간 서적을, 신간 서적보다는 만화책을 좋아하는 나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천재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지극히 평범한 두뇌를 가진 사람일 뿐이다. 이런 내가 천재들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문고전의 세계에 과감히 발을 들여놓을 용기를 냈고, 지금껏 도망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일일 수 있다. 어쩌다보니 분위기가 제법 자화자찬 쪽으로 돌아갔다. 수습을 해야겠는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언젠가는 나도 인문고전을 만화책처럼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뻔한 말밖에는.

 

나는 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심정으로, 읽지 않으면 작가로서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쫓기듯 인문고전을 펼친다. 그리고 이내 두통을 느낀다. 하지만 꾹 참고서 독서를 계속하다보면, 강박관념과 두통은 어느새 황홀한 감정으로 바뀐다. 거의 두뇌고문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서양 철학고전 독서도 마찬가지다. 읽다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나는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이 우주에는 우리가 오감으로 아는 시공간과 전혀 다른 시공간을 가진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세계는 인문고전 저자들이 만든, 그들의 정신이 살아서 빛나고 있는 세계다. 인문고전을 온 마음을 다해서 읽다보면 내 정신이 그 세계에 접속하는 것을 느낀다. 그때의 경험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밝고 아름다운 빛이 꽉 막힌 머릿속으로 확 뚫고 들어오는 느낌, 가슴속이 말할 수 없이 시원해지는 느낌, 단전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확 올라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는 그런 경험을, 특히 새벽에 일어나 홀로 독서할 때, 자주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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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지성 작가의 『인문고전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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