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내가 관심갖는 모든것

[스크랩] 4화. 인문고전 독서 전통, 어떻게 사라졌나? _ 이지성 작가.

이뿐냉이 2010. 9. 15. 10:07

4화. 인문고전 독서 전통, 어떻게 사라졌나?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인문고전 독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인문고전을 원서로 읽으라는 숙제를 내주던 교수도, 신입생에게 플라톤과 공자를 권하던 선배도, 뭐가 뭔지 모르면서도 죽어라고 인문고전을 읽던 학생도 다 사라져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베스트셀러를 읽으라는 숙제를 내주는 교수, 신입생에게 재테크 서적을 권하는 선배, 무협판타지 소설을 애독하는 학생들이 들어섰다. 물론 베스트셀러, 재테크 서적, 무협판타지 소설이 나쁘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세 가지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닌다. 나는 고전이 빠져버린 대학 교육의 현실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하고 있다. 참고로 말하면 나도 베스트셀러를 즐겨 읽는다.

 

『부자 교육 가난한 교육』(동아일보사)이라는 책이 있다. 황용길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교육학과 부교수가 썼는데, 미국 부자 계급의 교육이 빈자 계급의 교육과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와 우리나라가 사실상 미국 빈자 계급의 교육을 따라하고 있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 책 52쪽을 보면 “고급 지식교육은 똑똑하고 능력 있는 아이들에게나 적당하다. 은행가(부자)의 자식과 광부(빈자)의 자식이 필요로 하는 교육은 종류가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우리나라 교육계에 큰 영향을 미친 교육 평가론의 창시자 에드워드 손다이크(Edward Lee Thorndike)와 그의 추종자 매디슨 그랜트(Madison Grant) 등이 한 말인데, 이들은 진화론과 우생학을 신봉한 철저한 인종차별론자들이었다. 끔찍한 사실은 이들이 미국의 빈자 계급에게 실시할 목적으로 만들었고, 실제로 오늘날 미국 공립학교에서 시행중인 교육 과정이 그대로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현재 각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빈자 계급을 위한 고전 독서 과정인 클레멘트 코스의 창립자 얼 쇼리스(Earl Shorris)는 『희망의 인문학』에서 미국의 엘리트주의자들의 숨은 의도를 고발하면서 미국의 빈자 계급이 그 숨은 의도를 분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문고전 독서라고 말하고 있다.

“……빈민들이 훌륭한 교육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강령들을 보면 미국의 엘리트주의는 그리스인의 노예관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가난의 대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일지라도 부자들과 비교해서 인문학(고전)을 공부할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엘리트주의자들의 그러한 선험적 주장은 사실 단 한 번도 제대로 검증받지 않은 채 사회적으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엘리트주의자들의 충고 때문에 빈민들은 인문학(고전)을 공부할 기회를 차단당했고 그 결과 정치적 삶에 이를 수 있는 하나의 효과적인 길을 봉쇄당한 것이다. ……우파들 또한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내는 데에 있어서는 탁월하다.……그들의 관점에서 정확히 이해하고 있듯이, 빈민들이 인문학(고전)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매우 ‘급진’적인 행동인 것이다. 인문학(고전) 학습이 빈민들에게 정치적 삶을 가르치며, 진정한 힘이 존재하고 있는 공적세계로 그들을 확실하게 이끌어주기 때문이다.……타고난 능력에선 부자 아이들과 동등하거나 때론 더 뛰어날 수도 있는 가난한 아이들이지만 현대 사회의 게임에서 그들은 패배하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의 빈곤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 빈민들에게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 그 자체가 부를 재분배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의 출판대국이다. 일부 언론은 수시로 설문조사나 통계자료를 들먹이면서 우리나라 국민이 정말 책을 안 읽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만일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책을 읽지 않는다면 세계 7위의 출판 산업이란 존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인문고전 독서량은 세계 몇 위일까? 이 글을 읽는 독자는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책 좀 읽는 사람일 것이다. 소설도 경제경영서도 아닌 인문 분야 그것도 독서에 관한 글을 일부러 찾아 읽을 정도면 정말 남다른 독서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당신에게 묻고 싶다. 미국의 명문 사립 중고등학생들처럼 인문고전을 읽고 도서관에 가서 그 인문고전에 관해 쓰인 주석서들을 전부 읽고, 독후감을 쓰고, 토론을 해본 적이 얼마나 되냐고. 이 질문에 대한 독자들 개개인의 답이 우리나라 지식 경쟁력의 현주소이자 우리나라가 맞이하게 될 미래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두뇌의 수준은 그가 읽는 책의 수준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리고 두뇌가 우수한 인간이 그렇지 못한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 또한 상식이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지배 계급은 이 사실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피지배 계급의 문자 교육 자체를 금지했다. 이 악습은 현대 민주주의의 상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이상한 형태로 되살아났다. 문자 교육 자체에 있어서는 평등을 추구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불평등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의 부자 계급은 사립학교를 다니고 있고 빈자 계급은 공립학교를 다니고 있다.

 

물론 미국의 모든 엘리트들이 이런 식의 교육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당시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 격렬한 반대가 있었고, 지금도 많은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또 얼 쇼리스 같은 사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엘리트들이 빈자 계급에 대한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고 또 실제로 부자 계급과 빈자 계급의 지식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한편으로 미국은 사립 중고교 및 대학의 문을 세계 각국에 활짝 열어놓고 있다. 미국의 지배 계급이 전부 손다이크나 그랜트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허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의 교육 과정이 리더의 두뇌를 가진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문학 중심의 사립학교 교육 과정이 아닌 노동자의 두뇌를 가진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립학교 교육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육 과정이 우리나라에 완전히 정착하고 나자 우리나라에서 인문고전 독서의 전통이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유색인종 발전을 위한 국가협회(National Association for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를 세운 흑인 지식인 뒤부아(W. E. B. Du Bois)는 미국 인종주의 교육학자들의 교육 이론에 반대해서 외롭게 투쟁했다. 황용길 교수가 정리한 뒤부아의 지식교육론 중 일부를 옮겨보겠다.

“어느 인종을 막론하고 미래의 지도자는 지식 중심으로 교육되고 배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교육을 버리라니, 이는 우리의 운명을 백인들에게 맡기고 그들의 사슬에 묶여 마냥 끌려만 다니는 자살 행위와 다름없다.

뒤부아의 절규를 접하고 나는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 한 개가 얹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뒤부아의 절규가 곧 21세기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지성의 인문고전 독서법』이 독자님에게 유익하셨다면,  VIEW ON을 꾹 눌러주세요!

(아래에 있는 VIEW ON 손가락 클릭!)

 

 매주 월 / 수 / 금 오전 10시 이지성의 『인문고전 독서법』으로 21세기 새로운 경쟁력의 해답을 만나세요!

 

출처 : 이지성 작가의 『인문고전 독서법』
글쓴이 : 인문고전 독서법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