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내가 관심갖는 모든것

[스크랩] 3화.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에게 금지된 것은 무엇일까?_ 이지성 작가.

이뿐냉이 2010. 9. 15. 10:06

 

3화.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에게 금지된 것은 무엇일까?

 

 

인류 역사를 보면 언제나 두 개의 계급이 존재했다. 지배하는 계급과 지배받는 계급. 전자는 언제나 후자에게 많은 것들을 금지시켰는데, 대표적인 것이 인문고전 독서였다.

 

조선의 지배 계급은 인문고전 독서가 업(業)이나 마찬가지였다. 피지배 계급의 접근은 사실상 허락되지 않았다. 중국의 지배계급은 수시로 바뀌었다. 그러나 인문고전 독서를 지나칠 정도로 중시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피지배 계급은 인문고전의 세계로부터 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일본의 쇼군 계급은 중국 고전을 마치 비밀문서처럼 전수했다. 다른 계급은 고전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유럽의 왕가와 귀족 집안에서 실시한 교육은 인문고전 독서였다. 평민 이하 계급은 고전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미국의 백인 지배 계급은 흑인 노예 계급에게 인문고전 독서는 물론이고 문자 교육 자체를 금지했다. 이는 농노에게 글을 가르치면 매로 죽지 않을 만큼 때리고 감옥에 가둔 유럽 및 러시아의 지배 계급에게 배운 것이다.

 

21세기 지구의 지배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선진국들은 인문고전 독서에 열심이다. 그런데 21세기 지구의 대표적인 피지배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후진국들은 인문고전 독서와는 거리가 멀다. 아니, 국민의 대다수가 문맹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어쩌면 이것은 인류 역사의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나타났던 지배 계급의 ‘의도’는 아닐까? 그리고 ‘의도’는 21세기에 맞게 자연스럽고 세련된 형태로 아니 보이지 않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보이지 않는 ‘의도’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질문도 가능할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에게 금지된 것은 무엇일까?” 초선진국이자 초강대국인 미국과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그 문턱으로부터 발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 우리나라를 비교해보자.

 

미국은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인문고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레이트 북스 재단(The Great Books Foundation)’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인문고전 독서 프로그램 및 인문고전 독서 토론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인문고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기서 자신의 눈높이에 맞게 번역된 인문고전을 제공받을 수 있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독서 토론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저소득층, 빈민, 심지어는 노숙자도 의지만 있다면 인문고전 독서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류 대학 수준의 강사진이 포진하고 있는 무료 인문고전 강좌인 ‘클레멘트 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인문고전 독서 및 토론을 안내하고 지원하는 공공기관 및 단체는 미국 전역에 넘치도록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미국에 비교한다면 ‘없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한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의 어느 나라 못지않게 고전을 사랑했었는데 말이다. 팔도강산에 차고 넘치던 동양 고전은 이제는 청학동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미국 명문 사립 중고교의 고전 독서 열기는 놀라울 정도다. 1)플라톤의 『국가』를 읽고 소화한다. 2)도서관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주제로 집필된 모든 책을 찾아 읽는다. 3)플라톤의 『국가』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고 토론한다. 이런 식으로 인문고전을 한 권씩 철저하게 떼는 일은 미국의 명문 중고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중고교는 어떠한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과거에 우리나라 10대들은 오늘날의 미국 10대들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인문고전을 열심히 읽고 공부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풍토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우리나라 10대들의 책장에서 인문고전을 싹 치워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미국 대학들의 인문고전 독서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표적인 사례들을 보자. 세인트 존스 대학은 교육과정 전체를 인문고전으로 구성했다. 시카고 대학은 고전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공부하지 않은 학생은 졸업시키지 않는 제도를 운영한 적이 있다. 예일 대학은 ‘디렉티드 스터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존 로크나 마키아벨리 같은 인문학 고전을 중심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교수가 강의를 하고 두 번은 학생들끼리 세미나를 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를 마치면 교양 필수 여섯 과목을 수강한 것으로 인정한다. 하버드 대학교와 스탠퍼드 대학교는 21세기 학교 운영 방침을 발표하면서 인문고전 교육의 부흥을 다짐했다.

 

 

미국 대학들의 인문고전 독서 사랑의 진원지는 교수들이다. 대표적으로 스물여덟 살에 예일대 법대 교수, 서른 살에 시카고 대학 총장으로 부임한 천재 교육학자 제이미 인클란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이상학적 세계관과 인간관을 대학 교육의 뼈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인문고전이 중심이 된 교육 이론과 교육 과정을 만들고 이를 교육현장에 적용했다. 막스 테크마트 MIT대 교수는 자신을 가리켜서 이 시대 최고의 플라톤주의자라고 말한다. 스티븐 와인버그 텍사스대 교수 또한 마찬가지다. 경희대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도정일 교수는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몇 년 전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을 방문했던 한 한국인 교수가 깜짝 놀란 일이 있습니다. 인지과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대학원생들을 모아놓고 하이데거를 읽고 있더라는 거죠. 요즘 미국 경제학계를 보면 심리학의 통찰을 빌려 인간의 경제행위를 설명하려는 경향이 대두하고 있습니다. 경영학에서는 ‘서사이론’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들은 어떤가? 학부 교양 교육의 많은 부분을 인문고전 독서에 할애하는 미국 대학들과 같은 행보를 보이는 대학도 없고,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을 모아놓고 인문고전 강독에 열을 올리는 교수들도 없고, 스스로 인문고전을 구해서 치열하게 읽는 학생들도 없다. 아니, 서울대를 비롯한 우리나라 10대 대학 도서관의 대출 순위 상위권을 보면 무협 판타지 소설이나 일본 애정 소설이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학에서 인문학 자체가 고사 위기라는 소식이 신문에 단골로 보도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은 한때 세계 어느 나라 대학 못지않게 인문고전 독서에 열심이었다. 교수가 수업시간에 인문학 고전을 원서로 강독하고, 선배가 후배에게 철학고전을 권하고, 대학 4년 동안 고전 100권 돌파하겠다며 각오를 다지는 모습을 대학가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기형도는 시 「대학시절」에서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 때마다 총성이 울렸다.……”라고 읊고 있다.

황광우는 『철학콘서트』에서 당시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그려내고 있다.

“내가 플라톤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신입생 때였다. 대학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한 선배는 대학 4년 동안 책 두 권만 읽으라는 것이었다. 한 권은 공자의 『논어』요, 다른 한 권이 플라톤의 『국가』였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큼 웅대하던 20대의 젊은 나이, 1만 권의 책을 다 읽어도 채워지지 않을 왕성한 탐구욕을 지녔던 그 나이의 젊은이에게 4년 동안 책 두 권만 읽으라니……물론 선배는 나에게 만만치 않은 조건을 주문했다. 국문이 아닌 원문으로 읽으라는 것이었다. ……이후 대학 1년 내낸 나는 영문판 『국가』를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다. 빈 강의실에서도 읽고 음악 감상실에서도 읽고 식당에서도 읽었다. 뭐가 뭔지 모르면서 읽었다.”

 

 

 

『이지성의 인문고전 독서법』이 독자님에게 유익하셨다면,  VIEW ON을 꾹 눌러주세요!

(아래에 있는 VIEW ON 손가락 클릭!)

 

 

매주 월 / 수 / 금 오전 10시 이지성의 『인문고전 독서법』으로 21세기 새로운 경쟁력의 해답을 만나세요!

출처 : 이지성 작가의 『인문고전 독서법』
글쓴이 : 인문고전 독서법 원글보기
메모 :